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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의 mood[나눔]

마당노리 2016. 2. 10. 18:15


빌레몬서 1장

10. 내가 갇혀 있는 동안에 얻은 아들 오네시모를 두고, 그대에게 간청합니다.

11. 그가 전에는 그대에게 쓸모 없는 사람이었으나, 이제는 그대와 나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12. 나는 그를 그대에게 돌려보냅니다. 그는 나의 마음입니다.

13. 나는 그를 내 곁에 두어서, 내가 복음 때문에 갇혀 있는 동안에, 그대를 대신하여 나에게 시중들게 하고 싶었으나,

14. 그대의 승낙이 없이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그대로 하여금 선한 일을 마지못해서 하지 않고, 자진해서 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15. 그가 잠시 동안 그대를 떠난 것은, 아마 그대로 하여금 영원히 그를 데리고 있게 하려는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16. 이제부터 그는 종으로서가 아니라, 종 이상으로, 곧 사랑받는 형제로 그대의 곁에 있을 것입니다. 특히 그가 나에게 그렇다면, 그대에게는 육신으로나 주 안에서나, 더욱 그렇지 않겠습니까?

17. 그러므로 그대가 나를 동지로 생각하면, 나를 맞이하는 것과 같이, 그를 맞아 주십시오.

18. 그가 그대에게 잘못한 것이 있거나 빚진 것이 있거든, 그것을 내 앞으로 달아놓아 주십시오. 


1. 오네시모와 빌레몬

빌레몬서는 사도 바울이 골로새에 살고 있는 빌레몬에게 쓴 편지입니다신약에 사도 바울의 편지가 13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개인에게 보내는 편지도 있긴 합니다만 그 중에서도 가장 개인적인 내용이라고 볼 수 있는 독특한 편지라고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그 내용은, 그리스도인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공동체 내부에서 어떤 자세로 있어야 하는가에 대해 매우 중요한 인사이트를 준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가택연금을 당한 상황입니다. 밖으로 다니지는 못하지만 사도 바울의 주변인들이 집으로 드나들 수는 있었습니다그 상황에서 터키 소아시아 지역 공동체들에 심각한 문제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편지를 보내게 됩니다. 그 중에 골로새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빌레몬이라는 사람에게도 편지를 쓴 것입니.

 

빌레몬은 골로새라는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이후에 자신의 집을 오픈해서 예배를 하며 가정교회 형태로 모임을 갖는 사람이었습니. 오래 전 빌레몬에게는 오네시모라는 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네시모가 빌레몬의 물건을 훔쳐서 도망을 가 버렸습니다그러다 오네시모 역시 어떤 경로를 통해 사도 바울을 알게 되었고, 그도 역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젠 사도 바울의 곁에서 많은 일을 도와주고 있는 형편이었습니다이제 사도 바울이 소아시아 교회들에 두기고를 통해 편지를 보내는데, 골로새 지역에도 보내면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려는 것입니.


사도 바울의 머리 속도 복잡한 것 같습니다. 오네시모가 자신의 곁에 있는데 빌레몬이 있는 골로새 교회에 그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오네시모를 돌려보낼 수도 없었습니다. 당시 노예는 주인의 소유물이었기 때문에 노예가 도망치다 붙집히면 사형이 관행이었다고 합니다. 오네시모 역시도 그런 상황이 마음 편치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네시모에 대해 자신이 얻은 아들이라고까지 말했습니다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죽이지 말라고 압박을 하는 것이 아니라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두가 형제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밖에서는 계급이 나뉘더라도, 복음 안에서는 모두 동등합니다.




2. 이자익 목사와 조덕삼 장로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부유하면서도 인품이 좋은 '조덕삼'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테이트 선교사(한국명:최의덕)로부터 복음을 받아 금산교회당 설립했습니다. 

조덕삼의 집에는 '이자익'이라는 머슴이 있었습니다. 그는 경남 외딴 섬 출신의 고아였는데, 우여곡절 끝에 전라도의 조덕삼 집에서 머슴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조덕삼과 이자익이 선교사로부터 함께 세례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선교사가 그 지역에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이자익에게 영수(전도사 역할)를 맡깁니다. 조덕삼이 이자익의 설교를 듣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이후 교회에서 장로 투표를 하게 됐는데, 이자익과 조덕삼이 공동후보로 추천되었다가 이자익만 장로가 되고 조덕삼을 떨어집니다. 

덕삼 장로도 몇 년 후에 장로가 되긴 합니다만, 이런 상황이 누구에게도 편한 상황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특히 조덕삼과 이자익은 머리 속이 복잡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조덕삼 장로는 이자익을 시기하지 않았고, 이후에는 그를 평양신학교에 보내 학비와 기숙사비까지 지원합니다. 이자익 장로가 신학공부를 하게 한 것입니다. 이후 이자익 목사는 금산교회의 2대 담임목사로 옵니다. 조덕삼 장로와 모든 가족들은 그를 여느 교회보다 더 그를 따뜻하고 깍듯이 섬겼습니다. 마지막 유언에서도 자녀들에게 금산교회와 이자익 목사를 잘 섬기라고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3. 공동체의 문화_차별

지금부터 100년 전에, 사도 바울의 경우에는 2000년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이미 3500년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율법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미 인권과 존엄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계셨던 것입니다


문제는, 현대 한국 교회들에서 이런 차별의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많은 교회들에서 차별이 당연시 여겨지는 문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2015년 서울 모교회에서 교회측과 직원들 간에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 교회는 직원노동조합이 있었습니다. 한국 교회에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죠. 직원들이 노동조합을 설립하게 된 연유도 씁쓸합니다. 교회가 필요에 따라 일방적으로 직원을 해고하거나 용역 계약을 체결하는 등 고용 불안을 일으킨다는 이유로 노동조합을 설립했다고 합니다. 물론 정부 인가를 받았기 때문에 합법적인 노동조합입니다. 그럼에도 일이 진행되어가는 과정도 안타깝습니다. 교회법이 실정법보다 위에 있기 때문에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고, 갈등이 심해지던 당시 직원들은 모두 해고되고 임금은 체불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가 정도의 차이일 뿐 교회들에서는 흔히 볼 수 있다는 것이죠. 담임목회자와 부교역자, 직원들 간에 비상식적이고 비인격적인 대우가 많고, 노동력을 착취하거나 부당한 노동조건인 경우가 많습니다. 성도들 간에도 직분의 상하개념이 존재하고, 직분자들이 가진 힘을 휘두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주로 이런 것은, 개인적인 경우보다 의사결정과정, 재정결정 과정에서 주어진 힘의 바운더리를 벗어나면서 나타납니다. 그럼에도 은혜로 덮자거나 교회에서는 허용되는 분위기입니다.



저는 교회 내의 문제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마당넓은공동체가 어떤 문화를 만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어떤 성도가 인기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헌금 많이 하고, 좋은 직업을 갖고 있고, 일 열심히 하고, 목회자에게 좋은 소리하고, 데코 잘하고, 찬양 잘하고, 교회에서 유용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겐 신앙이 없어도 빨리 직분을 맡깁니다. 바쁘거나 아프거나 가난하거나 쓴소리 하는 사람들은 인기가 없습니다. 공동체 내에서 성별과 인종, 지위, 경제력, 직업, 인맥으로 인한 차별은 공공연하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첫 이미지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성도들 간에 사랑이 많은 것 같은 '느낌'을 원합니다. 그래서 새가족들이 제일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교육을 많이 합니다. 새가족부, 안내부, 교역자. 거기에 주차관리부와 주방팀까지도 처음 보는 성도들에게 웃으면서 대하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더 중요한 문제가 떠오릅니다. 그제서야 알게 되는 것이죠. 

건강한 소통구조입니다.

사랑 많은 공동체는 분위기나 느낌으로 나타나는 것보다, 건강한 소통구조로 드러나게 됩니다. 이것은 공동체원이 서로에 대해서 배려하고, 쉽게 타인의 의견을 묵살하지 않는 것을 직접 경험하고 느껴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오네시모가 많이 도와주니까 그를 위해 편지를 쓴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사도 바울이 노예제 폐지를 위해서 싸운 것도 아닙니다사도 바울이 복음 안에서 오네시모를 진정으로 대했는가 하는 것은 오네시모가 가장 잘 느꼈을 것입니다. 원 주인에게 가라는 말을 들었을 때 오네시모는 사도 바울의 삶에서 우러나는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마당넓은교회와 하나님의 가족 여러분,

서로가 서로를 동등하게 여기고, 배려하고 존중하는 그 분위기는 한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그 분위기는 실제로 복음을 따를 때 만들어지는 문화입니다그런 분위기의 공동체와 그렇지 않은 곳이 평소에는 별 차이 아닌 것 같지만갈등을 겪을 때 극복해 내는 것을 보면 정반대 양상으로 나타나게 됩니. 우리 공동체에서 이런 mood가 만들어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공동체의 mood from madang on Vim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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