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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이 필요한 사람들 [나눔]

마당노리 2016. 7. 19. 11:26

요한복음 6(14:13~21; 6:30~44; 9:10~17)

5. 예수께서 눈을 들어서,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모여드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말씀하셨다. 우리가 어디에서 빵을 사다가,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6. 예수께서는 빌립을 시험해 보시고자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자기가 하실 일을 잘 알고 계셨던 것이다.

7. 빌립이 예수께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 사람들에게 모두 조금씩이라도 먹게 하려면, 빵 이백 데나리온어치를 가지고서도 충분하지 못합니다.

8. 제자 가운데 하나이며 시몬 베드로와 형제간인 안드레가 예수께 말하였다.

9. 여기에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는 한 아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0.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앉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 곳에는 풀이 많았다. 그래서 그들이 앉았는데, 남자의 수가 오천 명쯤 되었다.

11. 예수께서 빵을 들어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 앉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시고, 물고기도 그와 같이 해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주셨다.

12. 그들이 배불리 먹은 뒤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남은 부스러기를 다 모으고, 조금도 버리지 말아라.

13. 그래서 보리빵 다섯 덩이에서, 먹고 남은 부스러기를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14. 사람들은 예수께서 행하신 표징을 보고 이분은 참으로 세상에 오시기로 된 그 예언자이다 하고 말하였다.

15.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와서 억지로 자기를 모셔다가 왕으로 삼으려고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 


1. 도입_절벽사회

몇 년 전 사업을 시작한 분이 계십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개업을 하고 여성 분 혼자 영업을 하시는 분인데, 그 분의 상황을 통해 한국의 경제상황을 볼 수 있었습니다. 7년 전 창업하셨는데 그 해부터 지금까지 상황이 좋았던 적이 없습니다. 게다가 거래처는 줄줄이 도산하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는 앞으로 좋아질 수 있는가 두려워질 정도입니다.

 

「절벽사회라는 책의 저자는 19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을 졸업한 기자인데, 자신의 처지를 중심으로 비슷한 연령대의 중년들 상황에 대해 말합니다.

고등학교나 대학교 동기 모임에 나가보면 성공했다고 여겨지는 친구들이 여럿 있습니다. 이제 막 50줄에 접어든 저자의 동기들은 1980년대 초 대학에 들어가 군복무를 마치고 대부분 1980년대 말에 취직을 한 세대입니다. 이른바 명문대로 꼽히는 SKY를 나오지 않더라도 괜찮은 직장의 안정적 정규직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 직장인으로의 삶도 순탄했습니다. 당시 대졸 직장인의 평균 결혼 연령은 남자 29, 여자 26, 경제적 어려움 탓에 결혼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습니다. 대개 전셋집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지만 5~7년 정도 열심히 저축하면 약간의 대출을 더해 소형 아파트를 마련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5~10년이 지나면 중대형 아파트로 옮겨가는 게 자연스러운 경로였습니다.


지금 그들은 행복할까요?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있을까요?

보험회사에 다니다 뒤늦게 한의대에 진학해 박사학위까지 받은 친구는 한의원 수입으로 아이들을 키우기 어렵다며 틈만 나면 주식 투자에 매달립니다. 변호사 친구도 사정 역시 비슷합니다. 죽도록 공부해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자격증을 땄습니다. 그런데 수입은 갈수록 줄고 연금과 같은 노후 보장책도 없다 보니 미래가 두렵기만 합니다. 억대 연봉의 상징인 대기업 임원으로 있는 친구들도 마찬가집니다. 해마다 대학생들이 가장 입사하고 싶은 회사로 꼽는 재벌 기업 임원으로 일하는 친구의 입에서도 어김없습니다. 조만간 회사에서 밀려날게 분명한데, 이 나이에 재취업될 리가 없다는 것이죠.

 

지금 한국 사회는 한 발만 삐끗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벼랑 끝에 서 있습니다. 개인이 아무리 노력하고 발버둥 쳐도 한 번만 실패하면 바로 절벽 밑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막장사회입니다.


저자는 이런 한국 사회를 '절벽사회'라고 규정합니다.

절벽 앞에 서 있다는 두려움의 중심에는 '' 문제가 있습니다. 먹고 사는 생계의 문제가 중심에 있는 것입니다.





2. 본문

본문을 보면, 예수님이 먹고 사는 문제 즉 현실에서의 구원과 영적인 구원 사이에서 얼마나 갈등하셨는가 하는 것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 앞에 많은 사람들이 왔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를 고쳐주셨기 때문에 그 소문이 나서 예수님이 계신다는 말이 들리면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고 병을 고쳐주셨는데, 그만 날이 저물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거기는 아무 것도 없는 빈 들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날도 저물었고 여기는 먹을 것이 없으니, 마을로 보내서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자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이 사람들을 먹이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죠. 어림잡아도 200 데나리온(1데나리온은 성인 일일 품삯, 1000~1500만원)이상 드는데 그런 돈이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그 때 다른 제자가 한 어린이의 도시락을 건네며,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고 낙심해 말합니다.

 

예수님의 질문을 잘 보면, 돈이 얼마 있느냐를 묻지 않고 우리가 어디서 빵을 사다가,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고 물으십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어디를 가더라도 이 사람들을 먹일 만큼의 빵을 구하긴 어려울 것 같다는 것과,

우리는 하늘에서 빵을 얻을 것이다는 두 가지를 의도하신 것처럼 느껴집니다.

 

예수님은 그 아이 도시락으로 성인 남자만 오천명, 여성과 노약자를 포함한다면 약 2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먹이셨다.



2.1. 우리와 예수님(시대)의 고민

그런데 제 고민은 사실 여기서 부터입니다.

첫 번째는, '왜 지속적으로 주시지 않으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어려움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도 먼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장으로 생계를 책임져 왔습니다.

본문 상황에서도 예수님은 끼니를 제대로 때우지 못하는 사람들이 안쓰러워 하셨습니다.

생계를 유지할 수 없을 정도의 극심한 가난은 사람의 영혼을 병들게 합니다. 다른 종류의 고통 역시 마찬가집니다. 오래 지속되는 고통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제대로 남아있기는 매우 힘들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사람들의 어려움을 모두 해결해 주시든지, 뭔가 대안이나 시스템을 만들어 주시면 될텐데, 왜 일회성 이벤트로만 끝내셨을까요.

 

두 번째는, '굳이 왜 먹이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 사마리아 여인의 경우에서 봤듯이, 눈에 보이는 물보다 영원한 생수가 더 중요하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영적인 것만 강조하시지, 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 주셔서 사람들을 계속 유혹하실까요.

 

이것은 요즘도 마찬가지다. 한국 사회의 가장 큰 고민은, 과연 늙어죽을 때까지 빚지지 않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2.2. 사람의 아들

소설가 이문열 씨는 자신의 글 「사람의 아들」에서 이 고민을 말합니다.

이 소설에서 ‘아하스 페르츠라는 사람은 예수를 만나 그 문제에 대해 도움을 요청합니다. 이 때는 예수가 사역을 막 시작하려던 참이었습니다.

먼저 아하스 페르츠가 예수께 물었습니다.

당신은 이런 곳에서 무얼 하고 있소?”

이 세상을 구원하라는 내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있었소.”

그 분이 누구시오?”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느님, 그리고 천지만물의 주인이신 야훼시오.”

당신의 말을 그대로 믿어 드리리다. 그런데 당신은 무엇으로 저들을 구원하시겠소?”

모든 것이오. 저들의 필요로 해 온 모든 것, 빌고 희구해 온 모든 것이오.”

그럼 먼저 하나 묻겠소. 지금 저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빵이오. 당신은 이 돌덩이를 빵으로 만들 수 있소?다시는 저들이 빵이 모자라 고통 받는 일은 없도록 해 줄 수 있으시오?”

사람은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고. 내 아버지의 크고도 깊은 사랑을 단순한 물질적인 은혜로 끌어내리려 하지 마시오.”

그렇소? 여전히 그 분의 뜻은 그러하오? 저들이 겪어온 그 오랜 배고픔과 목마름이 아직도 부족하단 말이오? 결핍과 갈구만이 저들 육신의 영원한 숙명이란 뜻인가요?”


이 문제에 대해서 예수님은 많은 고민을 했을 뿐만 아니라, 본문에서 보듯이, 이 문제를 해결할 경우 사람들이 자신을 왕으로 삼으려고 할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에게 큰 유혹으로 다가올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그 유혹은 소설 속 아하스 페르츠 뿐 아니라, 모습을 바꿔가면서 예수님께 다가 왔습니다. 처음엔 사탄이 유혹했고, 많은 군중들이 유혹했고, 나중엔 제자들과 예수님의 자아가 유혹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그 유혹을 이겨내고, 사람들에게 육신의 떡보다 영적인 떡이 더 중요하다고 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이미 수십, 수백 번의 전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하면서 광야 생활할 때, 수백만의 유대인들이 먹을 것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매일 같이 주셨고, 40년 광야생활 동안 굶어죽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매일의 양식을 통해서 영혼의 양식을 사모하는 일은 결코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사기에서도 보면 그들은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사를 통해 구원해 주면, 먹고 살만하고 평안해졌을 때 언제나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요한복음 6장

26~27

26.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먹고 배가 불렀기 때문이다.

27.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지 말고, 영생에 이르도록 남아 있을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여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줄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자를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49~52

49. 너희의 조상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다.

50. 그러나 하늘에서 내려오는 빵은 이러하니, 누구든지 그것을 먹으면 죽지 않는다.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나의 살이다. 그것은 세상에 생명을 준다.

52. 그러자 유대 사람들은 서로 논란을 하면서 말하였다.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에게 [자기] 살을 먹으라고 줄 수 있을까?





3. 사랑하는 가족 여러분,

 

소설을 인용할 때에도 말씀드렸지만, 예수님은 말씀으로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훨씬 더, 절대적으로 중요하긴 하지만,

육신을 위한 떡도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의 백성들의 현실 삶에 매우 큰 관심을 가지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 현실적 어려움을 네 힘으로 어떻게든 참아내고 천국에 잘 들어오라는 것이 아니라,

모든 현실 생활을 하나님 안에서 해결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언젠가 미래에 오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삶에 임합니다.

오늘의 먹고 사는 것에 구원이 임하고, 오늘의 영혼에 생명이 임합니다.

 

교회는 성도의 현실적 생활과 영적인 것을 이분법적으로 나눠서, 현실의 복만 너무 강조하거나, 영적인 생명만 강조해서는 안됩니다.

교회가 세상으로 나아갈 때, 그들의 현실적 고통의 문제 속으로 들어가야 하고, 그것을 통해 영혼의 문제까지 가야 합니다.

우리 마당넓은교회 공동체가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