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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기대를 부여잡고 [나눔]

마당노리 2016. 8. 4. 23:42

이번 말씀 시리즈는 '공동체의 속살'이라고 제목을 정했습니다. 교회는 성경에서 매우 중요하게 강조하고 있지만, 현실에서 보여지는 교회의 모습은 속상하고 안타까운 부분들이 많습니다. 단순히 현재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교회가 시작되던 때부터 기독교 역사 속에 늘 있어오던 문제들이 많습니다. 그 부분들에 대해서 제 나름대로 다섯 가지 정도로 분류하고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 나누고자 하는 것은 '공동체 자체'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합니다. 

무엇이 공동체인가, 등록하면 교인인가, 함께 예배하면 교인인가, 세상에 많은 공동체 굳이 교회여야 하나, 교회 꼭 다녀야(?) 하나, 믿음만 있으면 되지 않나, 교회 다녀봐야 특별한 것도 없고 상처 받을 일만 많은데 상처 받으면서도 공동체에 속해 있어야 하나, 예배만 드리면 공동체라고 불러도 되는가, 공동체는 어느 정도로 한정하며, 멤버십은 한계지어야 하는가, 어느 정도까지 친밀해져야 하는가, 친밀과 상관없는 것인가, 더욱 친밀해지기 위해서 애써야 하는가, 의도적으로 친밀해지고 싶다고 해서 가능한 것인가, 우리는 공동체에서 무엇을 기대하는가; 뭉클한 말씀? 가슴 뜨거워지는 예배? 교회는 특별한 공동체가 확실한가, 성령은 공동체에 어떻게 역사하나...

많은 의문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의문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한 채 공동체를 떠나갑니다. 그래서 교회 공동체가 생겨나는 경위에 대해서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도입_교회를 떠나는 사람들

가나안’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준비하신 땅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가나안에 성도라는 좋은 단어가 붙으면 의미가 달라져 버립니다.

가나안 성도는 교회에 안 나가('안나가'를 거꾸로 읽으면 가나안이 됩니다.)는 성도, 즉 신앙이 있지만 제도화된 교회에 환멸을 느끼고 공동체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세태어입니다.

예수는 좋지만 예수를 믿는 사람이 싫다, 그들과 동일한 부류가 되는 것이 싫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용기가 없어서 교회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고, 새로운 교회가 개척되었다고 하더라도 기대감은 전혀 없습니다. 과연 교회 공동체는 이 정도여야만 할까요?

 




2. 교회의 태동


 

마태복음 16:13~18

13. 예수께서 빌립보의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고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십니다."


18. 나도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페트로스, 조약돌). 나는 이 반석(페트라) 위에다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 죽음의(하데스의, 죽은 자들이 모여 있는 세계의) 문들이(세력이)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교회에 대해 언급한 매우 중요한 순간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다른 공동체들과 어떻게 다르며 어떤 특징들을 가지게 되는 지를 알려주신 것이라고 해도 될 것입니다. 

빌립보 가이사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서 있는 곳은 빌립보 가이사랴라는 도시 앞입니다. 이 도시는 원래 파네아스라고 불리던 곳인데 헤롯 빌립이 가이사 황제에게 바치기 위해 도시를 정비하고 이름을 바꿨습니다. 황제에게 바쳐진 도시들은 이 곳 외에도 많이 있는데, 공통점은 화려하고 인구가 많으며 황제의 신상이 있어야 합니다. 이 빌립봅 가이사랴 역시 그런 곳으로 유대 땅이지만 유대인들은 살지 못하고 이방인만 살던 로마식 성공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라 고백할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교회에 대해 말씀하신 것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직후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를 왕으로 섬길 것인가, 로마 가이사를 왕으로 섬길 것인가'에 대한 답을 들으신 후에야 교회에 대한 말씀을 하신 것이죠. 예수를 왕으로 섬긴다는 것은 세상적인 성공의 방식을 좇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예수께서 세우시겠다고 약속. 교회는 예수님께서 세우십니다. 잠시 후 이 내용에 대해서 다시 나누겠지만, 사람들이 의도한다고 해서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죽은 자들이 모여 있는 세계의 세력이 이기지 못하는 공동체.  교회 공동체는 엄청난 힘과 능력을 소유하게 됩니다. 죽은 자들이 모여 있는 세계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표현이 너무 직설적이고 거친 것 같지만, 죽음을 하나님과 분리된 것으로 본다면 맥이 통하는 부분입니다.

 

본문의 내용을 종합할 때, 예수님이 주시는 것은 돈이나 명예 같은 세상적인 가치가 아니라는 것을 대비를 통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께서 이런 성공을 주지 않음에도 예수를 따른다는 고백이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베드로를 중심으로 예루살렘 교회가 세워집니다. 교회가 이렇게 세워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데, 예수님은 사역 기간 내내 하나님나라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정작 현실에서 세워진 것은 교회인 것입니다. 베드로가 교회를 세우기 위한 목적으로 사람을 모으지 않았고, 공동체의 성격이나 방향성을 의도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하니 사람이 모였고 공동체가 만들어졌습니다. 겉으로는 매우 우연적이고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 같지만, 성령 하나님께서 그 방향을 주도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현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출발이나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서, 현대 교회들은 초대교회와는 다릅니다. 현대에는 교회의 밑그림과 사역의 방향을 뚜렷이 정하고, 의도적으로 사람을 모아서 공동체를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성령 하나님의 역사가 주된 원리라는 부분에는 동일합니다.





3. 교회의 특별함

예수님께서 의도하고, 성령이 주도하는 교회 공동체는 다른 어떤 종류의 공동체도 줄 수 없는 특별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두 가지 부분을 말하고 싶은데요,

 첫 번째는 내적인 부분입니다.

에베소서 4

13.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고, 온전한 사람이 되어서,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경지에까지 다다르게 됩니다.

 또 한 가지는 외적인 부분입니다.

에베소서 3

8. 하나님께서 모든 성도 가운데서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셔서,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는 부요함을 이방 사람들에게 전하게 하시고,

10. 그것은 이제 교회를 통하여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에게 하나님의 갖가지 지혜를 알리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인도하시는 방향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서 성장하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누리며, 드러내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봉사를 많이 하고 전도를 많이 하라는 뜻과는 다릅니다.

교회 공동체에만 하나님 나라, 천국의 풍성함이 그 안에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그 모임에 성령 하나님께서 풍성하도록 하신다는 약속이 담긴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족 여러분,


래리 크랩은  '영혼을 세우는 관계의 공동체'에서 현대 교회 공동체의 맹점을 말합니다.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때,

영적인 성장보다는 정서적인 치유나 상황 개선에 더 초점을 맞춘다.”


현대 성도들은 성령의 방향성을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성공하기 위해 경쟁하다가 받은 상처만 얘기하려 하고, 위로만 받으려고 합니다.

물론 이런 나눔도 중요하지만,

거기서 높아지려고 하는 것과,

거기서 믿음을 지켜내려고 하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가 예수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래리 크랩이 제안하는 방법은,

 우리는 공동체를 사거나 만들 수 없다. 단지 공동체가 되도록 우리 자신을 드릴 수 있을 뿐이다.”

 

점점 교회에 대한 기대가 사라져 갑니다. 어쩌면 교회에 대한 기대 자체가 잘 못된 것도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빌립보 가이사랴에서의 성공을 바라고 교회에 머물러 있다면 그 기대는 채우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도 줄 수 없는 부요함을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해 주신다고 하십니다. 

우리 마당넓은교회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풍요함을 기대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