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 1 | 2 | 3 | 4 | 5 | 6 | |
| 7 | 8 | 9 | 10 | 11 | 12 | 13 |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 28 | 29 | 30 |
- 시내 언약
- 절벽사회
- 공동체의 방향
- 고통의 문제
- 야고보서
- 출애굽기 23장
- 천국
- 기쁨의 토대
- 생존
-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
- 주영관 목사
- 익숙한 나 생소한 나
- 마카비혁명
- 하나님나라
- 권력 결탁
- 성령
- 변혁사역
- 팔복
-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
- 러빙핸즈
- 변혁사역체험학교
- 마당
- 복
- 천국 친숙하거나 낯선
- 마당넓은교회
- 성전
- 사사기
- 엔샬롬 시대
- 그리스도인의 복
- 공동체
- Today
- Total
Proclaim liberty
아이 돌보미 본문
제가 매일 아침마다 한 시간씩 하는 일이 있습니다.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은 아니지만 어떻게 하다보니 이렇게 됐습니다.
호준이의 엄마는 직장이 먼 곳에 있습니다. 그래서 아침 8시 정도에 어린이집에 오는 편입니다. 예전엔 칭얼대던 호준이가 요즘은 웃으면서 들어옵니다. 그렇게 된 데는 제 역할도 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랑 같이 놀거든요. 오늘은 '도미도미' 놀이를 했습니다. 도미노에요.
호준이랑 놀다보면 가끔 우리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우리 나라 부모들, 특히 아버지들이야 대부분 그렇겠지만 저도 아이들과 놀아주지 못했습니다. 큰 애 어릴 적에는 직장 다니느라 놀아주지 못했고 작은 애 어릴 적에는 교회 사역하느라 그랬습니다. 바쁘더라도 짬을 내서 아이들과 충분히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으련만, 저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아이들과 시간 보내는 자체가 부담이었고 아까웠었던 것 같습니다. 사역할 때 가정과 사역을 양분하는 문화 속에 있었습니다. 교회 사역을 위해서 가정은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요구받았었습니다. 새벽에 나가 밤늦게 들어가고 여름, 겨울 시즌엔 집에 가지 못하고 기도원에서 지내야 했었습니다. 목회자 삶의 범주에 가정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걸 옳다고 배운 시기는 참 불행했습니다. 그나마 아이들이 지금 저와 친밀한 걸 보면 다행이다 싶기는 하지만, 미안한 마음은 여전합니다.
저희 세대, 저희 부모님 세대는 더 했었죠. 저 역시 아버지와 보낸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기억이 나는 장면이 거의 없습니다. 제가 아주 어릴 적에 아버지는 편찮으셨고, 초등학생일 때 아버지는 신학 공부하러 양지로 가셨습니다. 더 커서는 사역하시느라 바빴구요.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때까지는 아버지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컸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아버지에게 그런 감정은 없지만, 대화가 친밀하게 진행되지 못하는 한계가 뚜렷합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저였기에 아이들에게 잘해주리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마음과 달리 습관은 훈련되지 못했습니다. 제가 바쁘고 힘들 때는 여지없이 짜증이 터져 나오곤 했습니다. 매우 자주. 호준이에게는 전혀 그런 내색 없이 놀아주는 정도를 넘어서 함께 노는 걸 보면,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할까 싶습니다. 저희 집 아이들은 커서 어떤 어른이 될까요. 아이들에게 어떻게 대할까요. 본인들은 인식하지 못하지만 자신에게 내재된 에너지만큼 상처가 있다는 것을 언젠간 알게 되겠죠. 그리고 그 상처를 알고 극복하려고 함에도 불구하고 생각이나 의도완 달리 부정적 행동이 나올 때가 있겠죠.
우리의 신앙도 그런 것 같습니다. 머리 속에서 맴도는 것이 행동으로 연결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행동하려면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데,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는 너무너무 쉽습니다. 잘 살고 싶은데 그럴 힘과 습관이 없는거죠.
참 다행인건,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우리보다 더 잘 아시고 이해하신다는 거죠. 그래서 다행이에요.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자녀들, 가정을 잘 경영해야 할텐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