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 1 | 2 | 3 | 4 | 5 | 6 | |
| 7 | 8 | 9 | 10 | 11 | 12 | 13 |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 28 | 29 | 30 |
- 마당
- 성전
- 그리스도인의 복
- 마당넓은교회
- 시내 언약
- 복
- 절벽사회
- 천국 친숙하거나 낯선
- 야고보서
- 변혁사역
- 천국
- 권력 결탁
- 변혁사역체험학교
- 주영관 목사
-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
- 공동체
- 공동체의 방향
- 사사기
- 하나님나라
- 익숙한 나 생소한 나
- 마카비혁명
-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
- 기쁨의 토대
- 엔샬롬 시대
- 출애굽기 23장
- 생존
- 성령
- 고통의 문제
- 러빙핸즈
- 팔복
- Today
- Total
Proclaim liberty
설교 시간 재미없다 본문
지난 주, 지난 한 달은 상태가 완전 메롱이었습니다. 우선 감기로 몸이 좋지 않았습니다. 작년말인가 연초에 감기에 걸렸던 터라 또 걸리진 않으리라 자신했었는데. 가족들 모두 돌림병처럼 골골 앓았습니다. 결국 주사 맞고 약을 사흘째 먹고 있습니다.
더 중요한 건 설교 때문에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목회자에게 설교는 가장 중요한 영역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석의해서 선포할 책임이 있습니다. 물론 목회자나 성도가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것에야 구별과 차별이 있을 수 없으나, 교회 문화에선 대부분 목회자에게 그 일이 맡겨졌으니까요. 목회자는 다른 어떤 것보다 설교 준비에 더 몰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특히나 저는 개척교회 목사라 한 주간 중에 예배 한 번 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으니 더 그래야 합니다. 그럴 수 있구요. 그런데 이번 달은 설교 준비 때도 그렇고, 설교할 때도 그렇고, 설교를 마친 후에도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면 할수록 제 자신의 부족함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자료도 부족하고 시간도 부족합니다. 겸손해 보이려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좀 처참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저를 뜨끔하게 하는 글들을 몇개 읽었습니다.
요즘 마음이 많이 완악해지는 것을 느낀다. 감동적이고 열의에 찬 설교를 들어도 그것이 진리를 전하는 것이라는 믿음이 잘 생기지 않는다. 설교를 듣다 보면 과연 이래서 사람이 변할까 회의적이다. 감동적인 예화도 교회가 세상과 동떨어진 감동코드를 가지고 있다는 반증이라는 생각이 우선 든다. 차라리 설교자의 음성이나 얼굴 없이 텍스트만 읽는 것이 낫다는 생각도 든다. 적어도 텍스트는 본질상 다양한 해석에 열려있기 때문에, 어떤 강요적 분위기는 훨씬 덜 풍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텍스트를 만들 때의 설교자는 좀 더 진실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텍스트는 양방향 소통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
마음 속에 어떤 참되고 간절한 '가치'(value)를 품지 않는다면, 설교자나 듣는 사람이나 모두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설교는 오히려 다른 해석의 여지를 막으면서 한가지로의 행함을 강요하지 않는가. (그나마 행함까지 강조하는 설교는 훨씬 낫겠지만) 그것도 불충분한 해석과, 불충분한 영성과, 통합되지 않은 체험들을 끌어 안은 채, 전신 갑주를 입은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그러면 세상은 진작에 이보다 훨씬 나아지지 않았을까 싶다.
요즘은 내 인생의 그 어느 때보다 눈물이 많아지고 세상의 문제에 민감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렇지 않으면 이상한 세상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설교는 점점 더 듣는 것도, 하는 것도 힘들어진다. 답답하다. 고통스럽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생기는 법이라지만, 왠지 양심의 가책을 떨칠 수 없다. 밤에 잠은 점점 줄어들고, 풀리지 않는 문제를 안고 이 책, 저 책 뒤적거리다가 머리도 쥐어 뜯으면서 나의 이런 교만과 완악함의 원인을 고민하고 있다. / Joshua Kyuchang Choi 님의 SNS에 실린 글을 허락 받고 싣습니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분은 아니지만, 글을 참 잘 쓰시는 분 같고, 평소에도 글을 보면서 많은 도전을 받았던 분입니다. 이번 글 역시 첫 문장을 읽는 순간 엄청나게 찔렸습니다. 한 삼일간 머리 속에서 많은 생각들이 소용돌이쳤습니다. 왜 내가 설교하면서도 재미가 없을까, 그 정도 밖에 못하는걸까, 설교가 뭘까, 하나님께선 내가 뭘 말하길 원하실까, 예수님의 설교는 왜 재미있었을까, 나는 지식을 전달하려고 하는 것인가, 이런 설교를 듣고 진리에 대한 해갈이 될까... 신대원 때 설교학을 들으면서 고민했을 때야 전도사였을 때라고 스스로 위안할 수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럴 수도 없는거죠. 게다가 제가 설교를 하지 않으면 대신 해 줄 사람도 없습니다.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유머 중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주일 아침 40대 중년 남자가 모친과 옥신각신합니다. 최근 주일 아침 교회 가기가 싫어진다는 겁니다. 이유를 말해 보라고 하자,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이 들고, 요즘 따라 장로님의 기도가 너무 길어서 짜증스럽고, 성가대가 자꾸 음을 틀려서 교회 가기 싫다고 했습니다. 노모가 그래도 교회에 가야 하는 이유를 세가지로 답했습니다. 첫째, 주일 아침 예배드리는 것은 선택이 아니고 명령이기 때문이다. 둘째,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배하는 것은 삶이지 네가 선택할 일이 아니다. 셋째, 그래도 네가 교회 담임목사인데 가야지 안가면 되겠느냐.
물론 제가 교회 가기 싫은 정도는 아닙니다. 설교에 대한 중압감이 너무 큰 것이죠.
전도사 때부터 웬만하면 시리즈 설교를 해왔습니다. 부담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재미있게 준비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미리 정한 제목에 내용을 '쑤셔넣는' 느낌이 너무 컸었나 봅니다. 그래서 자책감이 큰 것 같습니다.
예배는 하나님 아빠랑 만나는 시간인데 모두모두 즐거웠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