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claim liberty

엔샬롬의 시대 5캐릭터 - 에훗: 하나님의 방법[나눔] 본문

나눔

엔샬롬의 시대 5캐릭터 - 에훗: 하나님의 방법[나눔]

마당노리 2015. 9. 9. 12:58

사사기 315

이스라엘 자손이 주님께 울부짖으니, 주님께서 그들에게 한 구원자를 세우셨는데, 그가 곧 베냐민 지파 게라의 아들인 왼손잡이 에훗이다. 이스라엘 자손은 에훗을 시켜, 모압 왕 에글론에게 조공을 보냈다.

 

 

하나님께서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은 샬롬의 땅이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엔샬롬의 땅이 되고 말았습니다.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 민족은 거의 광야에서 태어난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광야에서도 만나와 메추라기로 충분히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어마무시한 가나안 민족들을 하나님께서 몰아내시는 것을 몸으로 체험했습니다. 눈앞에서 강물이 말라 바닥이 드러나는 초자연적인 현상들을 체험했음에도, 그들은 가나안 풍습을 습득하기를 서슴치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두지 못하는 그들이 각자 자신의 기준을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들과 하나님의 사이는 점점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플랜을 진행하시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을 돌아오도록 하셔야 했습니다. 그냥 내버려두면 아브람 때의 갈대아 우르처럼 되어 버릴 것은 뻔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돌아오게 하는 방법은 회초리 밖에 없었습니다. 그 회초리는 주로 기근과 전염병, 그리고 전쟁이었습니다. 고난과 고통이 없으면 하나님을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은, 우둔한 인간들의 슬픈 현실입니다.

 

 

 

에훗은 사사기에 등장하는 12명 - 드보라와 아비멜렉을 사사로 취급한다면 14명 -의 사사 중 한 명입니다. 에훗은 베냐민 지파 출신으로 왼손잡이였습니다. '왼손잡이'라는 표현이 단순히 왼손잡이(혹은 양손잡이)였는지, 아니면 오른손에 장애가 있는 사람이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베냐민'이란 뜻이 '오른손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오른손의 아들 지파에서 나온 왼손잡이. 장애가 있었는지 사회의 비주류였는지는 모르지만, 에훗은 그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모압 왕에게 나아가는데 별 제약이 없었습니다. 에훗은 모압 왕 에글론에게 조공을 바치러 갔다가 나온 후, 다시 돌아갑니다. 왼손잡이였기 때문에 오른쪽 허벅지에 35~40cm 정도의 칼을 숨겨 갔습니다. 왕을 독대할 수 있는 자리에서 에훗은 모압 왕을 찌릅니다. 온 힘을 다해 찔렀더니 칼자루까지 배에 들어가버릴 정도였습니다.

 

그러고보면 사사들 중에는 그 사회의 비주류들, 혹은 당당히 사사가 되기에는 썩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있습니다. 갈렙의 동생이었던 옷니엘을 제외하고는 모두들 흠을 잡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사

특징

옷니엘

 

에훗

왼손잡이

드보라

여성

기드온

우상 제작자 집안

입다

창녀의 아들, 딸을

삼손

사사 마인드 없음

기타: 삼갈, 돌라, 바락, 아비멜렉, 야일, 입산, 엘론, 압돈 

 

사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지도자로 세우신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앞에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사사기 후반으로 갈수록 사사들은 자신의 직책을 이용해 부를 축적하는 풍토였습니다.

 

그러나 사사는 드러나지 않을 수록 좋은 것입니다. 아이러니죠? 드러날 수밖에 없는데, 드러나지 않을 수록 좋은 것이. 이스라엘의 사사는 - 이스라엘의 예언자나 왕도 마찬가지지만 - 다른 나라의 지도자들과는 위치가 다릅니다. 이스라엘 주변국의 왕들은 자신이 신(神) 자체이거나 신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서, 하나님의 대리자, 메신저 역할이 강합니다. 자신들보다 하나님이 더 드러나야 합니다. 사람 사사가 있지만 이스라엘의 실제 사사는 - 이후에 왕은 -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약할 때 강함되신다'는 말을 참 많이 들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올 때 '약한 모습'을 보이려고 애를 씁니다. 실제 약한 모습이기도 합니다. 예배당에 오면 그런 분위기이고, 일상에 지친 상태에서 왔고, 어려운 일을 겪었을 때 하나님께 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우리는 약하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일상으로 가면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우리의 욕망 속에는 '우리 스스로 강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법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약하다고 말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그것은 약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이용해 먹는 것입니다. 사사기의 이스라엘처럼.

 

에훗: 하나님의 방법 from madang on Vim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