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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기 1장[나눔]

마당노리 2015. 9. 15. 12:23

이번 시리즈는 '주께서 우리를 사랑한 것이 무엇입니까?'라는 제목으로 말라기의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B.C. 721년에 북이스라엘이 앗수르 제국에 멸망을 당합니다. 엘리야 선지자를 비롯한 여러 선지자들이 북이스라엘에게 경고했습니다. 하나님을 배신하고 우상을 숭배하면 큰일 날 것이라고 말했었죠. 경고에도 불구하고 북이스라엘은 우상숭배를 지속했고 멸망합니다. 앗수르 제국의 식민지 통치 방법은 강제이주정책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외국으로 이주시키고 외국 사람들은 이스라엘로 이주시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외국으로 이주 당했고 소수의 사람만이 남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외국사람과의 통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중심지였던 사마리아는 이 때부터 유다 사람들의 조롱을 받게 됩니다.

 

북이스라엘의 멸망은 남유다에게 각성의 계기가 됐습니다. 남유다는 우상을 척결하고 예루살렘 성전 중심의 각성운동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또다른 문제가 남아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학대하고 착취하는 풍토가 남아 있었고, 이사야 선지자를 비롯한 사람들의 경고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결국 남유다 역시 B.C 586년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됩니다. 다행히도 바벨론은 앗수르처럼 강압적이진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문화와 종교도 어느정도 인정해 줍니다. 바벨론은 다니엘과 친구들에게 했던 것처럼 식민지 민족의 지도자들에게 바벨론식 교육을 하는 정책을 씁니다.

 

바벨론이 페르시아 제국에 망한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방국가들도 사용하시는 거죠. 이스라엘의 상황은 처참했습니다. 조그만 땅덩이에 15만 여명의 소수가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느헤미야와 에스라, 스룹바벨 등의 지도자를 통해 이스라엘은 성벽과 성전을 재건하려고 애를 씁니다.

 

 

말라기는 성전이 재건된 지 80~100년 후라고 여겨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느 정도 환경도 마음도 안정이 되긴 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던 '회복'이 더딘 것에 대해 패배감이 깊었습니다. 통치국이 바벨론에서 페르시아로 바뀐 것 뿐, 여전히 그들은 피식민지입니다. 환경은 풍요롭지 못합니다. 다윗 때의 영화는 멀어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우상숭배는 하지 않지만, 형식적인 제사만 겨우 드려지고 있었습니다.

 

  

말라기 1

1. 다음은 주님께서 말라기를 시켜 이스라엘 백성에게 경고하신 말씀이다.

2. “나는 너희를 사랑한다. 나 주가 말한다. 그러나 너희는,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증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고 묻는다.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더냐? 나 주가 말한다. 그런데도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3. 에서는 미워하였다. 에서가 사는 언덕은 벌거숭이로 만들고, 그가 물려받은 땅은 들짐승들에게 넘겨 주었다.

4. 에서의 자손인 에돔이, ‘비록 우리가 쓰러졌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세우겠다하고 장담하지만,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세울 테면 세워 보라고 하여라. 내가 기어이 헐어 버리겠다. ‘악한 나라, 주에게 영원히 저주받은 백성이라고 불릴 것이다.

5. 너희가 이것을 직접 보고, ‘주님은 이스라엘 나라 밖에서도 높임을 받으신다하고 고백할 것이다.

6. “아들은 아버지를 공경하고 종은 제 주인을 두려워하는 법인데, 내가 너희 아버지라고 해서 너희가 나를 공경하기라도 하였느냐? 내가 너희 주인이라고 해서 너희가 나를 두려워하기라도 하였느냐?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제사장들아, 너희가 바로 내 이름을 멸시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너희는, 우리가 언제 주님의 이름을 멸시하였습니까?’ 하고 되묻는다.

7. 너희는 내 제단에 더러운 빵을 바치고 있다. 그러면서도 너희는, 우리가 언제 제단을 더렵혔습니까?’ 하고 되묻는다. 너희는 나 주에게 아무렇게나 상을 차려 주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8. 눈먼 짐승을 제물로 바치면서도 괜찮다는 거냐? 절뚝거리거나 병든 짐승을 제물로 바치면서도 괜찮다는 거냐? 그런 것들을 너희 총독에게 바쳐 보아라. 그가 너희를 반가워하겠느냐? 너희를 좋게 보겠느냐? , 만군의 주가 말한다.

9. 제사장들아, 이제 너희가 하나님께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하고 간구하여 보아라. 이것이 너희가 으레 하는 일이지만, 하나님이 너희를 좋게 보시겠느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사랑한다고 하자, 이스라엘은 신경질적으로 말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증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적국(敵國 enemy) 에돔은 훨씬 잘 되는데 이스라엘은 도리어 어려움을 당하고 있으니,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에 대해 불평이 생길만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통치방법과 시기에 대해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반응입니다. 게다가 이스라엘은 하나님에게 할만큼 했다고 자신감이 있는 반응입니다. 즉, 이스라엘은 우상숭배를 하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는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풍요롭게 해야 하는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투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멸시하고 제단을 더럽혔다고 하시는 것이죠. 특히 제사장들이 제단을 소홀히 하고 병든 제물을 드리며, 백성들은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을 지겨워합니다.

 

 

10.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너희 가운데서라도 누가 성전 문을 닫아 걸어서, 너희들이 내 제단에 헛된 불을 피우지 못하게 하면 좋겠다! 나는 너희들이 싫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너희가 바치는 제물도 이제 나는 받지 않겠다.

11. 해가 뜨는 곳으로부터 해가 지는 곳까지, 내 이름이 이방 민족들 가운데서 높임을 받을 것이다. 곳곳마다,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바칠 것이다. 내 이름이 이방 민족들 가운데서 높임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12. 그런데 너희는, ‘주님께 차려 드리는 상쯤은 더러워져도 괜찮아!’ 하면서, 너희들도 싫어하는 음식을 제물이라고 그 위에 바치니, 너희는 지금 내 이름을 더럽히고 있다.

13. 너희는 또 이 얼마나 싫증나는 일인가!’하고 말하며, 제물을 멸시한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너희가 훔쳤거나 절뚝거리거나 병든 짐승을 제물이라고 가지고 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서 달갑게 받겠느냐? 나 주가 말한다.

14. 자기 짐승 떼 가운데 좋은 수컷이 있어서, 그것을 바치기로 맹세하고서도, 흠 있는 것으로 바치며 속이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나는 큰 임금이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이방 민족들까지도 내 이름을 두려워한다.”

 

 

 

 

하나님께서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꾸짖으시는 말씀은 우리가 깊게 묵상해야 하는 내용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도 없는 채 제물만 갖다 바치는 제사를 한 것처럼, 우리 역시 마음이 담기지 않는 예배를 드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온전치 못한 제사임에도 '많은 횟수'로 자신들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처럼, 예배가 문제가 있는데 더 많은 에배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고 하나 예배에 감정이입을 하려고만 합니다.

 

우리가 언제 주님의 이름을 멸시하였습니까 from madang on Vim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