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claim liberty

[4] 공동체 본문

마당

[4] 공동체

마당노리 2014. 12. 30. 17:54

저는 공동체에 참 익숙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제가 어릴 적엔 시골에 학교가 썩 많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런진 모르겠습니다만, 중학교나 고등학교 때문에 집을 떠나서 살아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 역시도 14살 때부터 가족을 떠나야 했습니다. 친척집에서 있기도 했지만 주로 자취나 하숙을 했습니다. 가족들과 처음 떨어지다보니 겪게되는 일들이 많습니다. 처음엔 부모님의 그늘을 벗어난 자유가 엄청나게 크고 좋았습니다. 일탈과 탈선을 하더라도 잔소리하는 사람이 없으니 영혼이 자유로울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곧 외로움이 더 크게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정서적인 에너지는 점점 더 고갈되어 가서 방 한켠에 빨래가 쌓여가고, 문칸방 허름한 주방엔 설거지 해야 할 그릇이 쌓여갔습니다. 아플 때의 서러움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그런 시간을 오래 지내다보니 생각의 습관에 깊숙히 자리 잡은 것이 외로움 말고도 또 있었습니다. '자기중심'입니다. 대부분의 것을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하다보니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것에 익숙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그렇다는 것을 결혼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타인의 말을 경청하지 못하고, 의견을 조율할 줄 모르고, 감정을 절제한다거나 타인에 대한 배려의 방법, 사랑을 주고 받는 법을 모른다는 것을 느지막해서야 깨닫게 된 것이죠.

저의 그런 부족함은 제 자존감을 갉아먹기도 했지만, 가장 가까운 아내와 자녀들에게 비수가 되어 날아갔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려면, 자신과 타인을 제대로 사랑하려면 배워야만 합니다. 그 배움은 사람들 속에서라야 가능합니다.


교회는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고 한 가족이 되었음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자라기 위해서는 공동체 안에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저처럼 공동체에 익숙하지 못한 듯 합니다. 공동체를 꺼려하는 것 같습니다. 공동체를 필요로 하면서도 그간에 워낙 많은 상처들을 받아온 지라 공동체에 들어가기가 두려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혼자 조용히 예배합니다. 예배가 시작되고 교역자들의 안내가 끝날 즈음 뒷자리에 앉았다가, 축도가 채 마치기도 전에 슬며시 자리를 뜹니다. 그렇게 개인주의적인 모습들에 익숙합니다. 다시 용기를 내서 공동체 속으로 들어가더라도 상황은 만만치 않습니다. 예전에 상처받았던 그 모습들에서 전혀 바뀌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젠틀하지만 점차 알아가면 알아갈 수록 역시나입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고 모두 제각각 자기중심적입니다. 자신을 드러내기 좋아하고 타인에 정죄하기를 즐깁니다. 돈있고 힘있는 사람들이 목소리가 크고 다재다능한 사람들은 너댓가지 일을 하면서 탈진 직전입니다. 깨어진 공동체입니다. 본질을 잃어버리고도 무엇이 잘못 되어 있는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 지를 알지 못합니다. 


하늘가족은 더불어 함께 성숙해 가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도록 성숙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더불어 함께 성숙하기 위해서 믿음의 등급이 매겨져서는 안됩니다. 서로의 나눔에 자신의 일처럼 비밀을 지켜주고 안전한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야 합니다.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논리로부터 공동체를 함께 지켜야 합니다. 자신을 드러내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미성숙의 문화로부터 멀어져야 합니다. 서로 진실되게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의 약함에 대해 함께 도우며 극복해 가야 합니다.

마당넓은교회 공동체는 그렇게 진실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그런 노력을 포기한다면 존재할 이유가 없어진 것입니다. 

'마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

[6] 영역  (0) 2014.12.30
[5] 지체  (0) 2014.12.30
[3] 전제  (0) 2014.12.29
[2] 또 교회?  (0) 2014.12.29
[1]이 블로그는  (0) 2014.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