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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에 대한 경각[나눔]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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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에 대한 경각[나눔]

마당노리 2016. 3. 9. 19:59

이번 본문은 사역(私譯)으로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갈라디아서 1, 유진 피터슨  메시지 신약

4~5.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자기 몸을 제물로 바치시고, 우리가 사는 이 악한 세상에서 우리를 건져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구원을 경험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바랍니다! 참으로 그렇게 되기를!

6~8. 나는 여러분의 변덕이 믿기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여러분을 불러 주신 그분을 그렇게도 쉽게 배반하고 다른 메시지를 받아들이다니요! 여러분도 알다시피, 그것은 사소한 차이 정도가 아닙니다. 그것은 완전히 다른 메시지, 이질적인 메시지, 메시지라고 할 수도 없는 것, 하나님에 관한 거짓말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여러분 사이에서 동요를 일으키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왜곡하고 있습니다.

9.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심지어 하늘에서 온 천사일지라도, 우리가 처음 전한 메시지와 다른 것을 전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 전에 말씀드렸고 이제 다시 말씀드리지만, 아무리 유명하고 자격이 대단한 사람이라도 여러분이 처음 받은 메시지와 다른 것을 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

10~12. 내가 이처럼 강경하게 말하는 것이 사람들을 조종하려는 것이겠습니까? 혹은 하나님의 환심을 사려는 것이겠습니까? 아니면 대중의 박수를 얻으려는 것이겠습니까? 대중의 인기를 얻는 것이 나의 목표라면,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 되려고 애쓰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친구 여러분 아주 단호하게 말씀드립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전한 이 위대한 메시지는 그저 인간의 낙관론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전통으로 물려받은 것도 아니고, 어떤 학파로부터 배운 것도 아닙니다. 나는 그것을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받았습니다. 나는 그 메시지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직접 받았습니다. 




 어느 일간지에 세계 최고 부유한 62인 중 29명 명단이 실렸습니다. 이들이 소유한 부()는 전 세계 하층민 65억명의 절반이 소유한 부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난 5년간 이들의 부는 44% 늘어난 반면 하층민의 소유는 41% 감소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단면입니다. 인류 문명이 가장 발달돼 있다는 현재의 흐름이기 때문에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지난 해 이후로 우리나라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단어 중의 하나가 '금수저, 흙수저'라는 표현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이 있고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이 있다는 표현입니다. 이것은 단지 출발점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차이를 노력으로 극복해 내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는 의미입니다. 갈수록 나아질 가능서은 없고 사람들의 희망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세상의 모습에 대해 '악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위에서 언급한 그들이 더 많이 벌기 때문에 악한 것이 아니고, 그들이 나누지 않거나 가난한 사람을 돌보지 않기 때문에 악한 것도 아닙니다. 이들 중에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기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소유나 분배의 문제가 악하다는 의미 속에 포함되긴 하지만, 이것은 결과일 뿐 근원적인 문제는 아닙니다



본문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이 악한 세상에서 구원해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사실 세상이 악하지 않은 적은 없습니다. 아담이 죄를 지은 후 세상은 언제나 악하다고 표현되었습니다. 세상이 악하고, 악한 결과물들을 계속 배출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단 하나, 그들의 삶의 중심에 하나님이 없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게 되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채워주시는 삶을 살게 되면서, 모든 종류의 부족과 차별, 고난을 이길 힘을 얻게 되었음을 말합니다. 그것은 단지 죽어서 천국가면 행복해지고 모든 것이 풍족해진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만 쏙 뽑아내서, 크리스천의 삶은 병이 모두 낫고 돈을 대박 벌고 시험에 합격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지금 현재 우리의 삶을 채워왔던 공급원이 우리 자신에서 하나님으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은혜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크리스천만 독립적인 구역에서 살거나 크리스천만의 표식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위기가 늘 존재합니다. 우리 앞에 놓인 위기는 매우 다양한 요인들이 있는데, 갈라디아서에서는 우리가 예전의 모습으로 회귀되어버리는 것에 대해 경고합니다. 갈라디아 지역에 있는 크리스천 공동체 역시 다른 곳들처럼 유대인 크리스천들과 비유대인 크리스천들이 섞여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생각할 때,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유대인으로 태어나 율법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할례는 그들과 타민족을 구분하는 기준이었고, 구원의 중심적인 요소라고 생각해 온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율법을 작은 부분 하나까지 모두 지켜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함정입니다. 

율법을 구원에 이르는 길로 생각하지만, 

누구도 지킬 수 없기 때문에 넘을 수 없는 벽인 것입니다. 

그런 앞뒤가 막힌 상황에서,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복음이었습니다. 그것은 자유였고 해방이었고 근원적인 해결책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유대인 크리스천들(중 일부)이 할례와 율법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10. 내가 이처럼 강경하게 말하는 것이 사람들을 조종하려는 것이겠습니까혹은 하나님의 환심을 사려는 것이겠습니까아니면 대중의 박수를 얻으려는 것이겠습니까대중의 인기를 얻는 것이 나의 목표라면나는 그리스도의 종이 되려고 애쓰지 않을 것입니다


이들이 이방인들에게 율법을 요구하는 이유는, 

대중의 박수를 얻고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해서라고 지적합니다.

사도 베드로가 어느 날 환상을 봤더랬습니다. 하늘에서 보자기가 내려왔는데 거기에 보니 율법에서 먹을 수 없도록 막은 부정한 동물들이 담겨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먹으라고 하십니다. 그 환상을 본 후 이탈리아의 군대 장교인 고넬료에게 세례를 주고 성령이 임하는 것을 경험하게 됐습니다. 그 이후 베드로는 이방인들과 식사를 자주 했습니니다. 

그런데, 보수적인 유대인들이 오자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버리고 맙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분하고, 유대인이 우위에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인 것입니다. 바나바도 그랬고 안디옥 교회 많은 사람이 그랬습니다. 


이런 이중적인 모습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의 박수도 받고 싶기 때문이죠. 더 근원적으로 가면, 유대인들이 이방인보다 더 우월하다, 믿음만 갖고 있는 사람보다 율법도 지키고 할례도 받은 사람이 더 우월하다는 생각이 근저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습이 너무나 위험한 것은,

우리로 다른 복음에 빠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복음은 이단 사상처럼 뭔가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외에, 율법이나 행위로 구원받을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 다른 복음입니다. 

구원 없는 율법에 묶여 살면서, 이방인보다 우월하다는 그 한 가지 자기 도취적인 삶에 만족하는 그 삶을 그리워하는 것이고,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악한 세대에서 구원해 주셨는데, (그들을 구원하지는 않고) 다시 악한 세대와 동일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죠.


우리는 너무 쉽게 우리 자신과 타인의 신앙을, 그 행위에 의해 평가합니다. 유대인의 경우에는 하나님게서 주신 율법이었음에도 그것을 강요하지 말도록 하는데, 우리는 한국 교회의 문화와 전통에 의해 만들어진 것을, 마치 믿음보다 더 중요한 것인양 강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타인에게 행위를 요구하는 그 마음 속에는, 그것을 하고 있고 말하는 나 자신이 우월하다고 여기는 마음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타인에게, 우리 자신에게, 심지어 하나님께 잘 보이려는 마음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말씀을 보고 성령 하나님을 따르는 훈련만 해 가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공동체가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