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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정의와 하나님의 성품 [나눔]

마당노리 2016. 10. 23. 18:40

아모스 5

10. 무리가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며 정직히 말하는 자를 싫어하는도다(A).

11. 너희가 힘없는 자를 밟고 그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거두었은즉(B), 너희가 비록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주하지 못할 것이요 아름다운 포도원을 가꾸었으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X).

12. 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무거움을 내가 아노라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B’).

13. 그러므로 이런 때에 지혜자가 잠잠하나니 이는 악한 때임이니라(A’).




1. 도입_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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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국회의원과 우리나라 국회의원을 단순비교할 순 없습니다. 덴마크는 인구가 약 500만명이고 국회의원은 180명 정도라고 합니다. 그러니 인구 28000명당 국회의원 한명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17만명당 한 명입니다. 업무 효율성이나 이런 부분은 다각적으로 비교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영상을 보고 씁쓸함을 버릴 수 없는 것은, 단순히 우리나라에는 왜 이런 사람이 없는가’, ‘왜 우리는 그런 문화가 만들어지지 못했는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과연 '우리도 이제는 부정부패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스스로 질문했을 때, 매우 확신에 차서 절대 그럴 일은 없다고 답을 하는 내 모습에서 더 우울함을 느낍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나라의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보다 이미 정신적인 부분, 가치적인 부분이 너무 망가져버린 것이 문제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태풍 앞에 놓친 촛불 같은 운명의 북이스라엘을 보면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2. 본문

아모스 선지자는 예언자 세계에서 몇 가지 의미있는 역할을 했는데,

- 처음으로 예언을 문서화

공의의 문제와 국가의 존립 문제를 함께 묶음

특히 두 번째 문제는 당시 사람들에게 매우 큰 충격이었습니다. 단순히 하나님만 잘 믿으면 하나님께서 복 주실 줄 알았는데, 정의롭게 살지 않으면 나라를 멸망시킬 것이라는 선포는 큰 충격이었던 것이죠.  

아모스는 남유다 사람으로 북이스라엘에 가서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아모스 선지자보다 10년 정도 후에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선지자가 또 있었습니다(요나, 호세아, 아모스는 동시대). 그러니까 거의 같은 시기입니다. 그 선지자는 호세아 선지자인데 북이스라엘 사람이었습니다. 북이스라엘 출신 선지자로서는 마지막 사람인 것입니다그가 호세아서에 기록한 북이스라엘의 모습을 아모스서와 함께 보면 매우 유사하고 내용을 보충해서 알 수 있습니다 

종교상:

바알 신들에게 분향하며 귀고리와 목걸이로 몸단장을 하고, 정부들을 쫓아다니면서 나를 잊어버린 그 세월만큼, 내가 이제 그에게 모든 벌을 내릴 것이다.(2:13)

내 백성이 나를 알지 못하여 망한다. 네가 제사장이라고 하면서 내가 가르쳐 준 것을 버리니제사장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나에게 짓는 죄도 더 많아지니(4:6~7)

사회상:

에브라임은, 거짓 저울을 손에 든 장사꾼이 되어서, 사람 속이기를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에브라임은 자랑한다. ‘, 내가 정말 부자가 되었구나. 이제는 한 밑천 톡톡히 잡았다. 모두 내가 피땀을 흘려서 모든 재산이니, 누가 나더러 부정으로 재산을 모았다고 말하겠는가?’(12:7~8)



2.1. 진리, 공의

아모스 서에서도 유사한 내용들이 나옵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이제 북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해 다시 한번 말하는데, 구조가 동심원으로 짜여있습니다.

          A. 진리를 미워함(5:10)

              B. 가난한 자를 박해함(5:11a)

                 X. 심판(5:11b~c)

              B’. 의로운 자를 박해함(5:12)

          A’. 진리를 침묵시킴

성문’(v.10)은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던 곳으로, 여기에서 예언자들이 말씀을 선포하기도 했고, 재판이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책망하고 지혜를 말하는 것은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 정직하게 말하는 자를 박해할 뿐만 아니라, 점점 더 폭압이 강해져서 지혜자는 더욱 음지로 숨게 됩니다.

이것은 그들이 진리를 대하는 태도였고, 하나님에 대한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의로운 사람들까지 박해하는 것은 공의에 대한 부분이며 이웃과의 관계에 대한 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선포하실 때, 두 가지를 분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반드시 이웃과의 관계에서 드러나야 하는 것입니다.



2.2. 무너진 정신

그런데 우리가 봐야 하는 것은 이들의 삶과 행동, 이스라엘의 시스템이 개선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는가 짚어봤으면 좋겠습니다.

호세아 14:2~3 보면, 하나님께서 그들 회복 방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너희는 말씀을 받들고 주님께로 돌아와서 이렇게 아뢰어라.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우리를 자비롭게 받아 주십시오. 수송아지를 드리는 대신에 우리가 입술을 열어 주님을 찬양하겠습니다. 다시는 앗시리아에게 우리를 살려달라고 호소하지 않겠습니다. 군마를 의지하지도 않겠습니다. 다시는 우리 손으로 만들어 놓은 우상을 우리의 신이라고 고백하지도 않겠습니다. 고아를 가엾게 여기시는 분은 주님밖에 없습니다.”

종교행위적인 열심과 거기에서 오는 당당함을 버리고, 마음에서부터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의지하고, 약자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결국 북이스라엘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시스템, 행동 이전에 이미 정신이 망가져 있었던 것입니다.(남유다 역시)

  

김영란법이 시행되었습니다. ‘부정 청탁 및 금품 수수 금지법’입니다. 이 법이 시행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보면, 기자, 법조인, 국회의원 같은 사람들입니다. 나라의 정신과 가치를 세워야 하는 자리에 있으면서 도리어 기뻐해야 할 사람들이, 더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그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어느정도까지 썩어있는가, 정말 공정하고 깨끗한 것을 기뻐하는 문화가 될 수 있을까 싶습니다.



2.3. 심판주, 회복주 여호와

우리는 이 시점에서 다시한번 이 시리즈의 첫 말씀을 상기하고자 합니다 

일반적으로 예언서는 3+3+1 구조라고 말씀드렸었습니다. 이방 국가들 6개에 마지막 유다에게 집중하는 구조입니다. 아모스는 마지막에 ‘+1’을 더 붙여서 북이스라엘의 큰 죄를 더욱 강조하고 부각시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다시 한 번 봐야 하는 것은, 앞의 이방나라들에 대한 심판 선언입니다. 이 나라들은 모두 강대국입니다. 이 나라들이 여호와를 생각하는 것은, 조그만 나라, 힘없는 나라의 힘없는 민족신(民族神) 정도입니다. 그런 신이 심판을 선언한다고 이 나라들이 두려워서 떨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선지자가 심판을 선언할 때마다 사신을 보내 심판을 듣거나 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압니다. 여호와는 세계 열방의 통치자이며, 그 통치하심이 지금 우리에게도 유효하다는 것을 압니다.

공의로움은 역순이다. 북이스라엘을 시작으로 유다와 다른 모든 나라들에도 언젠가 완전한 공의를 이루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단순히

우리가 의롭게 살지 않으면 벌 받고 심판받는다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만드시고 싶은 세계는 공의로운 세계이며,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로움이 우리 속에서 자라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가족 여러분,

그리스도인이 기대하고 추구하는 것은, 도덕적인 삶이나 윤리적 사회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사는 것입니다.

그 과정과 결과로 도덕과 윤리적인 모습이 나타날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정치에 대해서, 사회 문제와 교육, 문화에 대해서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시대, 이 땅에 있도록 하신 뜻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면 반드시 그 영향들이 현실로 드러날 수밖에 없고, 교회들은 예언자적인 선포를 해야 합니다. 형태는 기독교 메시지가 아니라, 도덕과 윤리의 형태일 것입니다.

어렵고 귀찮고 가능성도 안 보이지만 그 꿈을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고, 작은 걸음이라도 해 가는 속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