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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맛보는 거룩의 세계 [나눔]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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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맛보는 거룩의 세계 [나눔]

마당노리 2016. 11. 15. 10:55

1. 강하고 담대하라

아브라함 언약 후에 모세 언약을 나누면 좋지만 내용이 방대해서 다음 기회에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은 언약의 주된 흐름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와 약속하시는 이유에 대해서 함께 나누겠습니다. 먼저 아래 본문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하고 모세가 여호수아를 불러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에게 이르되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들에게 그 땅을 차지하게 하라 그리하면 여호와 그가 네 앞에서 가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매우 매끄럽게 연결됩니다. 하나의 본문이라고 봐도 어색하지 않은 것 같지만 두 개의 서로 다른 본문입니다. 본문만 다른 것이 아니라, 두 말씀이 주어지는 장소와 상황도 다르고, 강조점도 다릅니다.

'강하고 담대하라'는 내용이 반복적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왜 강하고 담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잠시 찾아보십시오.


앞쪽 본문은 신명기 31:6~7절 말씀입니다. 이들은 광야에서 지내고 있는데, 이들이 광야 생활을 하게 된 것은 40년 전의 사건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에 정탐꾼을 보냈는데 그들이 돌아와서 보고한 내용은, 가나안 사람들은 거인이고 전사라서 우리가 절대 이길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두려워서 가나안에 들어가지 말자고 하는 지경이 됩니다. 이런 상황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신명기에서는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용기를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반면 여호수아에서는 강하고 담대하게 '율법을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나누고자 하는 부분은 여호수아서의 말씀인데,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 입구에 있습니다. 그들은 이제 여리고 민족을 시작으로 해서 차례차례 전투를 해가야만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지도자라면 어떤 말로 용기를 줘야 할까요. 아마도 '힘내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같은 전투력을 상승시키는 격려를 할 것입니다그런데, 오늘 하나님은, 강하고 담대하여 율법을 잘 지키라고 하십니다. 이게 무슨 격려가 되겠습니까. 전투를 하는 동안에도 지켜야 하는 율법이 있다는 말인가요? 

하나님은 그들이 이미 가나안 땅을 점령한 것을 전제로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힘이 강력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전투에 직접 참여하시고, 이 전투에서 이기도록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선물

2: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3: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4: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6: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신다는 것은 첫 여리고 전투에서 잘 나타납니다. 그들은 그저 매일매일 성 주변을 돌기만 할 뿐인데, 7일째 되는 날 여리고성이 무너졌고 이미 여리고 사람들은 혼비백산해서 전의를 상실한 상태였습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이야말로 가장 큰 격려가 아닐까요?  

하나님은 그 다음 얘기를 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그 땅에 들어가면 담대해야 한다,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은 전투보다 더 무서운 일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가나안의 문화였습니다하나님을 믿지 않는데도 훨씬 더 크고 화려하고 웅장한 문화를 소유하고 있고, 엄청난 식량을 생산해 내는 그 문화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서 무식하고 미개하고 초라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문화를 좇아가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믿고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후에 어떻게 됐는지는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금방 동화돼서 우상을 만들고 온갖 짓을 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지키라고 한 것은, 단순히 십계명 지키고 나쁜 짓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놈들은 나쁜 짓해도 너희는 좀 착하게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가나안의 문화를 상대하는 대항문를 만들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대항문화의 중심적 특징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함께하신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이 주시는 형통과 평안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믿기 때문에 순종이 가능한 것입니다.




3. 우리에게 가나안은

그런데 문제는, 우리에게는 정복할 가나안이 없다는 것입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예배당 건축할 땅을 얻기 위해 땅밟기를 하고 가나안을 주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땅을 주실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도둑놈 심보일 뿐입니다. 판매자가 손해를 보더라도 우리는 이 땅을 (더 싸게 혹은 거저) 얻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이 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직장을 얻거나 시험을 치거나 경쟁을 할 때,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에게만 혜택을 주지 않습니다. 우리는 노력하고 애쓰고 준비한 것에 대해 정당한 대가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기도가 더 성경적입니다. 게다가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가나안을 약속했지만, 우리에게는 그렇게 땅을 약속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여호수아에게 주신 용기의 말씀은 우리에게 무의미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8절 이하를 보면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의 중심 요소는 '땅'과 '자손'입니다. '자손'은 혈통적 자손에서 영적인 자손으로 바뀌었습니다. '땅'은 물리적 땅에서 하나님 나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가 상대할 가나안은 타종교의 사람이나 어떤 특정인들이 아니라, 이 땅의 문화입니다. 하나님 없이도 충분히 풍요롭고 오직 돈만을 목표로 생명과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 문화가 우리 앞의 가나안입니다. 이 문화는 교회 밖에만 있지 않고 교회 안에도 있습니다. 도리어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복이라는 미명 아래 가나안 문화를 더 추구하기도 합니다. 이런 문화를 상대하기에 교회는 매우 나약합니다.

그렇기에 세상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있을 것이라는 약속이 매우 큰 용기가 됩니다. 우리는 세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문화를 전파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가족 여러분,

강하고 담대하게 마음 먹더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결국 나에게 필요하고 원하는 일과 상관없다고 실망되실지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에 내가 기뻐하고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을 내가 싫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갈등과 아쉬움은 계속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구별되게 드러나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기쁨으로 순종할 때입니다. 그 때 우리 삶은 변화될 수 있고 그때서야 비로소 이 땅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언약백성으로 그 언약이 무거운 짐이 아니라 우리를 거룩하게 하며 그 거룩함이 우리의 기쁨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