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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의 신앙 [나눔]

마당노리 2016. 12. 13. 20:24

사무엘하 112 ~ 4

2. 어느 날 저녁에, 다윗은 잠깐 눈을 붙였다가 일어나, 왕궁의 옥상에 올라가서 거닐었다. 그 때에 그는 한 여인이 목욕하는 모습을 옥상에서 내려다 보았다. 그 여인은 아주 아름다웠다.

3. 다윗은 신하를 보내서, 그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 보게 하였다. 다녀온 신하가, 그 여인은 엘리암의 딸로서, 헷 사람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라고 하였다.

4. 그런데도 다윗은 사람을 보내어서 그 여인을 데려왔다. 밧세바가 다윗에게로 오니, 다윗은 그 여인과 정을 통하였다. (그 여인은 마침 부정한 몸을 깨끗하게 씻고 난 다음이었다.) 그런 다음에 밧세바는 다시 자기의 집으로 돌아갔다.


1. 도입_다윗의 범죄(犯罪)

구약의 많은 부분이 그렇지만, 사무엘하 11, 12장은 매우 많은 언어유희와 행간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다윗 왕이 집에서 낮잠을 자고 느지막하게 일어나서 지붕을 거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여인이 목욕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 모습에 반하고 말았습니. 다윗은 사람을 시켜서 그 여인에 대해서 알아보라고 했더니, 그녀의 이름은 밧세바이고 우리야의 아내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알았을 때, 다윗은 멈춰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결국 다윗은 그 여인을 불러 동침하고 말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이 사건을 볼 때, 다윗 왕이 중년에 위기를 맞아 간음을 하게 하게 됐다는 부분만 부각해서 보곤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건의 다른 면을 좀 다루고자 합니.





2. 위기와 기회

4절은 이렇게 시작합니. ‘그런데도 다윗은 사람을 보내어서 그 여인을 데려왔다.’

다윗은 신하에게서 그녀의 남편이 있다는 것을 들었을 때 멈췄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후의 상황은 다윗의 예상이나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가 임신을 하고 맙니다. 밧세바가 이 사실을 알려왔을 때, 다윗은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머리를 굴립니다. 먼저 우리야의 아이로 위장하기 위한 계획을 세웁니다. 그래서 전장(戰場)에 나가있는 우리야를 불러들입니다. 우리야와 밧세바를 동침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우리야는 대쪽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정말 순수하게 나라를 사랑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집에서 며칠 쉬라고 해도 기어이 집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전우들은 전장에 있기 때문입니다. 술을 먹여서 취하게 해도 집에 가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첫 번째 계획은 수포로 돌아갑니다.

다윗은 계획을 바꿔서 우리야를 죽일 계획을 세웁니다. 전장으로 돌아가는 우리야에게 편지를 들고가서 요압 장군에게 전달하도록 합니다. 편지를 읽어 본 요압 장군의 다윗의 의중을 바로 알아차렸습니다. 요압은 우리야와 몇몇 군사들을 암몬 전투 최전방, 성벽 바로 아래까지 투입을 시킵니다. 결국 우리야는 죽고 맙니다.


 멈춰야 했을 때 멈추지 못한 다윗에게 상황이 꼬이고 일이 더 커지고 맙니다. 처음 간음죄에서 시작해서 살인을 계획하고 청탁하고, 무고한 사람을 죽이기까지 합니다. 다윗이 정말 악하게 된 것은, 처음의 욕망을 참지 못하는 모습보다,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 또다른 악을 계획하고, 상황이 어긋나자 또다른 악을 계획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중간 어느 시점에 멈출 수 있지 않았을까요?

 

우리는 자주 처음 거짓을 덮기 위해서 계속해서 더 큰 거짓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을 봅니. 그런데 거짓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필연적인 것은, 하나님의 뜻과 더 멀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지 않기 때문에, 오직 스스로 죄를 기획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모든 부담을 혼자 짊어져야 하는 것인데, 양심과 신앙, 영혼, 감정 모든 것이 파괴되어 갑니다. 정당하지 못한 일을 하는 사람은, 처음엔 달콤해 하지만, 차츰 삶이 피폐해집니.




3. 사건의 이면

사무엘하 12장에서 갑자기 하나님이 나타나십니다. 다윗이 욕망을 느끼고 죄를 짓고 또다른 죄를 기획할 때는 아무런 반응이 없으시다가, 우리야가 죽고 다윗이 밧세바를 왕궁으로 불러들이고 아이가 태어난 후에야 하나님께서 나타나십니다. 이제 모든 사건이 잘 마무리되고 조용해졌다 싶었는데 나타나신 것입니.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보내서 꾸중하시는데, 그 내용을 읽어볼까요.

 

사무엘하 127 ~ 10절

7.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내가 너에게 기름을 부어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고, 또 내가 사울의 손에서 너를 구하여 주었다.

8. 나는 네 상전의 왕궁을 너에게 넘겨 주고, 네 상전의 아내들도 네 품에 안겨 주었고, 이스라엘 사람들과 유다 나라도 너에게 맡겼다. 그것으로도 부족하다면, 내가 네게 무엇이든지 더 주었을 것이다.

9. 그런데도 너는, 어찌하여 나 주의 말을 가볍게 여기고, 내가 악하게 여기는 일을 하였느냐? 너는 헷 사람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다. 너는 그를 암몬 사람의 칼에 맞아서 죽게 하였다.

10. 너는 이렇게 나를 무시하여 헷 사람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아다가 네 아내로 삼았으므로, 이제부터는 영영 네 집안에서 칼부림이 떠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다윗의 간음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습니다. 지금 하나님은 두 가지를 묶어서 얘기하십니다.

내가 너 왕 만들었다.

그런데 우리야를 죽이고 우리야의 아내를 네 아내로 만들었다.

 

, 왕은 백성을 이방의 압제에서 해방시키고 백성을 평안하게 하는 임무를 담당해야 하는데, 그런 일하라고 왕으로 만들어 줬더니, 도리어 권력을 사유화하고 백성의 가정과 삶을 파괴하면서까지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 있다는 것을 꾸짖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너 이러려고 왕 시켰던가. 자괴감이 든다이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죠.


 첫 본문 4절에서도 그 부분이 드러납니.

4. 그런데도 다윗은 사람을 보내어서 그 여인을 데려왔다. 밧세바가 다윗에게로 오니, 다윗은 그 여인과 정을 통하였다.

⇒ 이 부분을 조금 더 풀어서 번역하면 "다윗이 사자를 보내어 저를 취하여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저가 그 부정함을 깨끗케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입니다. 여기서 취하다라는 동사는 왕으로서의 권력 남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용어입니다.

게다가, 사무엘하 11장에 다윗의 감정변화는 매우 자세하게 나타나지만, 밧세바의 감정은 전혀 드러나지 않습니. 다윗은 밧세바의 기분도 묻지 않았고 의견도 묻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욕구 해결에만 관심이 있었지 밧세바의 감정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밧세바는 다윗의 권력에 눌려 강간을 당한 것입니다.

  

 


4. 결론_과정의 신앙

 

우리는 모두 어떤 일을 할 때, 의도와 과정, 결말을 겪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은 연속성을 갖지만, 우리는 구분해서 봐야 합니다.

좋은 의도임에도 악한 결말이 오거나, 나쁜 의도임에도 좋은 결말이 오기도 합니다. 우리는 결말을 예측하고 의도하지만, 결말은 우리 능력 밖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좋은 의도를 가지고 일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더욱 집중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선한 의도 뿐만 아니라 선한 과정을 거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좋은 의도로 시작해서 결과가 좋으면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지만, 과정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과정 자체가 악한 경우가 정말 많다는 것입니다.

과정은, 아이를 양육할 때, 사업할 때, 정치에서, 직장에서, 생활 속에서 얼마든지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성공하도록 하기 위해서 아이의 특성이나 의사는 신경쓰지 않고 학원만 강요합니다. 기도하면서 회사를 차리고 회사를 성공시켜서 많은 헌금을 하겠다고 하지만, 정작 직원들은 엄청난 노동의 양과 비인격적인 대우, 박봉에 시달립니다. 특히 다른 사람과 함께 할 때, 자신보다 힘이 없는 사람을 대할 때, 너무나 쉽게 악한 과정을 겪습니다. 그리고 과정이 악하다는 것을 모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의도와 결과만 좋으면 모두 하나님의 은혜이고, 신앙적인 행동일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비춰, 의도가 좋지 않거나 좋지 않은 과정이 반복된다면 멈춰야 합니다. 점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부합한지 봐야 합니다.

그것은 엄청난 용기이며 결단이지만, 평소 하나님께 순종하는 훈련이 있다면 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권력과 힘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힘이 있죠? 직장 상사로서, 부모로서, 직분자로서 힘을 부여받았습니다. 그 힘을 잘 사용하여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좋지만, 과정에 충실하고 과정에서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삶의 자리에서 지혜롭게 과정과 결과를 만들어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