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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의 에세네파, 개혁의 근거[나눔]

마당노리 2015. 11. 11. 19:09

에세네파는 예수님 시대의 4대 분파 중 하나지만 성경에선 그 흔적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열심당은 그나마 단어라도 나오지만 에센파는 이름마저도 안 나옵니다. '에세네(Esseness)'란 '거룩'이란 말에서 왔습니다. 그들은 한마디로 은둔공동체입니다. 그 중심에는 제사장들이 있었습니다. 사두개파 역시 제사장들이 중심이죠. 하스몬 왕조가 대제사장 가문이 아님에도 직분을 접수합니다. 그 때 제사장들이 사두개파에게 대제사장은 대제사장 가문에서 나와야하지 않냐고 제안합니다. 그것이 거부당하자 일부 제사장들이 어떤 '의의 교사'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만듭니다. 회원 수는 4000여명 정도였다고 하니 바리새파보다 조금 적은 편입니다. 사해 근처의 쿰란 동굴에 기거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여러 마을과 도시들에도 공동체가 있었다고 합니다. 공동체에 소속되기까지는 매우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했습니다. 토라를 공부하고 실천하며 3년의 수습기간을 지낸 후, 정식 시험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공동체에 소속될 수 있었습니다.   

에세네파는 매우 철저하게 검소하고 금욕적인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제사장들이 중심이지만 사두개파와는 달리 그들은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 역시 에세네파 출신이거나 소속이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 역시 에세네파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을 많이 채용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 성찬, 세례, 빛과 어두움, 멸망의 자녀와 구원의 자녀, 하나님의 절대적 예정, 메시야, 죄사함과 구원 등 많은 용어와 의미들이 기독교적 의미와 유사합니다.

 

 

사도 바울이 사용한 에세네파의 용어와 개념

 

9:22~23 진노의 그릇, 긍휼의 그릇

12:1-2 산제물

고전 6:19 성령의 전

고후 6:14~16 빛과 어두움, 하나님의 성전

5:6~11. 빛의 자녀

1:11~12 우리가 예정을 입어

1:12-13 흑암의 권세, 빛 가운데

 

 

에세네파는 예수님 이후 로마 군단에 의해 대부분 죽임을 당하고, 남은 일부는 유대인들 속으로 흩어져 사라졌다고 합니다.

 

 

 

 

제가 에세네파에 대해서 함께 나누고자 하는 것은, 신학적 유사성 때문이 아니라 형태적인 부분입니다. 에세네파가 사라진 4~500년 후 비슷한 무브먼트가 유럽에서 나타납니다. 수도원 운동입니다. 당시 유럽 기독교는 매우 풍요로웠습니다. 기독교는 박해의 시대를 훨씬 지나서 로마의 국교가 되었습니다. 사제들은 경제적으로 넉넉할 뿐만 아니라 교황은 왕과 경쟁할 정도로 권력이 강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거룩한 열망을 가진 이들은, 세상과 멀어져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수도원 운동'입니다. 사유재산을 갖지 않고 공동생활을 하며 '기도하며 일하라'는 모토에 충실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수도원 운동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수도원이 존재합니다만, 당시 수도원 운동은 실패로 평가받습니다. 일반 성도들은 자신들이 세속과 멀어져서 살지 못하지만, 수도사들의 삶에 대해서는 매우 존경했습니다. 수도사들이 존경받기 시작하자 수도원에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수도원은 점점 늘어났고 수도원끼리 경쟁이 심해졌으며 서로간에 비방도 많았습니다. 공적보조를 받는 것 외에 사적 기부금도 엄청났기 때문에 점점 부유해졌습니다. '기도하며 일하라'는 모토와 다르게, 궁핍하지 않으니 기도도 하지 않고,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수도원장들의 세력도 커져갔고, 성직자들의 윤리 문제도 심각해졌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수도원 뿐만 아니라 중세 교회 전체가 그랬고, 돈을 사랑하는 기독교는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져갔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예수님 시대 이스라엘과 중세 유럽에서만 그친 것이 아닙니다. 현재도 동일한 반복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경제적 풍요, 권력과의 결탁을 바라보며 거룩함에 대한 열망은, 세속과의 결별을 생각하게 합니다. 많은 이들이 수도원 혹은 수도원 같은 기도원으로 들어가거나, 그럴만한 환경과 용기가 없으면 교회 건물 속으로 들어갑니다. 고요한 공간에 있으면 세속으로부터 멀어져 거룩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 매우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멀어지고자 하는 세상과 세속은 누구인가요. 그들과 멀어지는 우리는 거룩하게 될까요?

 

수도원이나 기도원이 불필요하다거나, 세속에 머물러도 충분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스스로 끊임없이 개혁되고 있는가를 우리 스스로 점검하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특히 종교개혁의 후손으로 우리 스스로가 성경을 기준으로 끊임없이 개혁하는 것을 신념으로 가진 사람들입니다. 교회 공동체가 말씀 앞에 온전히 서 있기 위해 중요한 것은, 목회자의 영향력과 더불어서, 만인제사장적인 사고가 교회 공동체 내에 뿌리내려야 합니다. 목회자와 평신도의 상하계급적 관계는 건강성을 해칩니다. 목회자와 평신도가 모두 성도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논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당넓은교회가 지향하는 공동체의 기초적인 모습 중에는 '의사결정권'과 '재정결정권'이 소수에게만 주어져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은둔의 에세네파, 개혁의 근거 from madang on Vimeo.